하드웨어의 역습.. 재평가되는 제조업과 제조 기반 스타트업
*이 글은 외부 필자인 이복연님의 기고입니다. '에셋 라이트' 모델의 한계와 물리 세계의 재부상 지난 15여 년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배해온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에셋 라이트(Asset-Light)'였습니다. 제조 공장이나 대규모 재고, 물리적 거점을 최소화하고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데이터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 모델이 가장 효율적인 비즈니스 구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클라우드 서버와 전문 개발 인력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빠르게 확장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높은 자본 효율성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기대할 수 있는 대표적인 투자 대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11년 마크 안드레센이 언급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는 선언은 단순한 전망을 넘어 지난 15여 년간 산업 구조를 설명하는 대표 문장처럼 기능해왔습니다. 이 시기 하드웨어 및 제조 기반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웠습니다. 대규모 연구 개발과 설비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고, 생산 공정에서의 불량 리스크와 재고 관리, 원가 변동 같은 부담을 안고 있는 제조 기업은 확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자주 할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 지형 역시 플랫폼, 핀테크, 콘텐츠 등 무형의 부가가치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서비스에 집중되었습니다. 반면 정밀 부품, 전력 장비, 로봇, 반도체 설계와 같은 딥테크 기업들은 기술적 완성도와 산업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자본 회수 속도가 느리고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투자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산업에 도입되면서 이러한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멀티모달 AI는 추가 사용자당 비용이 "0"에 수렴하는 기존 소프트웨어 서비스와는 달리 막대한 규모의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수많은 GPU가 동시에 가동되어야 하고, 데이터 병목을 줄이기 위한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확보도 중요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산 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력 인프라, 냉각 시스템, 초고압 변압기, 전력 반도체와 같은 장비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지능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이를 떠받치는 물리적 기반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